무원
고려

고려 13세기(강종, 고종, 원종) 무신정권 1170~1270


강종(재위: 1211~1213) 무신정권 1170~1270


고종(재위:1213~1259) 무신정권 1170~1270
불교 승려의 전기를 수록한 고승전이다. / 『해동고승전』(각훈 1215)국9-19-12 해동고승전 /지9-12-09
• ( ㉢ )는/은 강진백련사를 결사하여 법화신앙을 내세웠다. / ㉢요세, 백련사 결사(1216)지9-19-07 요세가 세운 백련사를 후원하였다. / 최충헌(집권:1196~1219) 백련사(1216)지9-15-13 강진백련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불교 운동인 결사(結社)를 조직하였다. / 백련사 결사(요세 1216 고종)지9-14-2-20 천태종의 신앙 결사체인 백련사를 조직하였다. / 백련사 결사(1216 요세)법9-18-05
• 고종 5년(1218) 금나라의 지배를 받던 ㉠___ 이(가) 난을 일으켜 고려에 침입하였다. 김취려가 지휘하던 고려군은 강동성에서 ㉡___ 과(와) 연합하여 ㉠___ 을(를) 토벌하였다. 이에 고려와 ㉡___ 은(는) 형제의 맹약을 맺었다. / ㉠거란몽골지9-14-2-08
최우 집권 / 최우(집권:1219~1249)지9-16-16
• 치안유지를 위해 야별초를 설립하였다. / 야별초(1220) 최우국9-20-02
정방을 설치하여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 정방(1225 최우)국9-20-02 정방 설치를 지시하는 무신집권자 / 정방(1225 최우)법9-16-05 / 정방의 설치와 폐지 과정 / 정방(1225 최우)법9-15-03
• 사신으로 온 저고여는 수달피 1만 령, 가는 명주 3천 필, 가는 모시 2천 필 등을 요구하였다. 저고여가 돌아가는 길에 압록강 부근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살리타가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였다. - 고려사절요 - / 저고여 피살사건(1225.3.2.) 몽골의 1차침입(1231)법9-16-06 다루가치를 배치하여 고려의 내정간섭하였다. / 몽골의 1차 침입(1231)지9-21-04 충주성에서 천민들이 몽골군에 맞서 싸웠다. / 몽골의 1차 침입(1231)지9-21-09
•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겼다. / 강화천도(1232.6.)국9-19-03 • ㉡___에 항전하기 위해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겼다. / ㉡몽골 강화천도(1232.6.)지9-14-2-08 • 유승단이 “성곽을 버리며 종사를 버리고, 바다 가운데 있는 섬에 숨어 엎드려 구차히 세월을 보내면서, 변두리의 백성으로 하여금 장정은 칼날과 화살 끝에 다 없어지게 하고, 노약자들은 노예가 되게 함은 국가를 위한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라고 반대하였다. / 강화천도(1232.6.) 유승단(1168~1232)지9-14-06 최우는 (나)에 대항하여 강화도로 천도하여 항전하였다. / (나)몽골 강화천도(1232.6.)법9-17-11
처인성 전투에서 적의 장수 살리타사살하였다. / 처인성 전투(1232)지9-20-18 김윤후가 이끈 민병과 승군이 몽고의 살리타 군대를 물리쳤다. / 처인성 전투(1232 용인)지9-14-2-07 몽골군을 물리치는 김윤후처인 부곡민 / 처인성 전투(1232)법9-20-04 몽골병이 이르자 윤후가 처인성으로 난을 피하였는데, 몽골의 원수 살리타가 와서 성을 치매 윤후가 그를 사살하였다. 왕은 그 공을 가상히 여겨 상장군의 벼슬을 주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 <고려사> / 처인성 전투(1232)법9-13-04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적장 살리타를 사살하였다. / 처인성 전투(1232)법9-12-18
최우도적을 막기 위해 만든 조직에서 비롯되었다. / 삼별초 시행(1232), 야별초(1220)국9-14-15
금속활자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하였다. / 1234 지9-16-16
• 이곳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재조대장경을 만들었다. / 이곳:강화도, 대장도감 설치(1236)지9-21-10 • 적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한 염원에서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 팔만대장경(1236~1251)지9-20-18 고려대장경을 다시 조판하여 완성하였다. / 팔만대장경(1236~1251)지9-16-16 •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팔만대장경 / 팔만대장경(1236~1251)법9-17-09 • 고려는 (다)의 침략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대장경을 제작하였다. / (다)몽골 팔만대장경(1236~1251)법9-17-11 • 종교적 염원이 담긴 팔만대장경이 조판되었다. / 팔만대장경(1236~1251)법9-16-06
• 『향약구급방』 / 1236지9-19-04
황룡사 9층 목탑 등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 몽골 침입시(1238)법9-22-13
쌍성총관부를 두어 철령 이북의 땅을 지배하였다. / 쌍성총관부(1258~1356)지9-21-04
김준 집권 / 1258~1268지9-16-16

원종(재위: 1259~1274) 무신정권 1170~1270
• ★ 무신정권 몰락 / 1270국9-22-18 왕정 복구 / 1270지9-16-16
몽골이곳동녕부를 두었다. / 이곳:평양, 동녕부(1270~1290)지9-21-10
• 원종 12년 2월에 도병마사가 아뢰기를, “근래 병란이 일어남으로 인해 창고가 비어서 백관의 녹봉을 지급하지 못하여 사인(士人)을 권면할 수 없었습니다. 청컨대 경기 8현품등에 따라 ( ㉠ )으로 지급하소서.”라고 하였다. -『고려사』- / ㉠녹과전(1271)지9-17-2-04 경기 8현에 한하여 지급되었다. / 녹과전(1271)지9-15-20
삼별초가 반란을 일으켜 대몽 항쟁을 계속하였다. / 삼별초의 난(1270.5.~1273.4.)지9-22-12 삼별초진도제주도에서 항쟁을 전개하였다. / 삼별초의 난(1270.5.~1273.4.)법9-22-01 • 이전 문서에서는 몽고의 연호를 사용했는데, 이번 문서에서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고려첩장(高麗牒狀)』- / 고려첩장(1271) 삼별초가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국9-14-15 / • 이전 문서에서는 몽고의 덕에 귀의하여 군신 관계를 맺었다고 하였는데, 이번 문서에서는 강화로 도읍을 옮긴 지 40년에 가깝지만, 오랑캐의 풍습을 미워하여 진도로 도읍을 옮겼다고 한다. -『고려첩장(高麗牒狀)』- / 고려첩장(1271) 삼별초가 일본에 보낸 외교문서국9-14-15 / 삼별초가 난을 일으켰다. / 삼별초의 난(1270.5.~1273.4.)법9-1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