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
고려

고려 12세기(명종, 신종, 희종) 무신정권 1170~1270


명종(재위:1170~1197) 무신정권 1170~1270
정중부이의방이 정변을 일으켰다. / 무신정변(1170)지9-21-09 무신정변 발생 / 무신정변(1170)지9-16-16 중방을 중심으로 권력을 행사하였다. / 무신정변(1170)법9-17-16
조위총이 정중부 등의 타도를 위해 이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 이곳:서경(평양), 조위총의 난(1174)지9-18-03 • 서경 유수 조위총이 난을 일으켰다. / 조위총의 난(1174)법9-22-01 서경유수로서,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하였다. / 조위총의 난(1174)법9-18-16
이의방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 정중부(1174)국9-20-02
망이, 망소이가 반란을 일으켰다. / 망이·망소이의 난(1176 공주)국9-20-06 망이⋅망소이가 이곳에서 봉기하였다. / 이곳:공주, 망이·망소이의 난(1176)지9-21-10 망이⋅망소이 등 명학소민이 봉기하였다. / 1176지9-16-16 공주 명학소에서 난을 일으켜 청주, 아산 일대까지 함락하고 개경을 향해 북진하였다. / 공주 명학소의 난(1176)지9-14-2-13 공주 명학소에서 신분 차별에 반발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 망이·망소이의 난(1176)법9-18-16
전주의 군인들이 관노(官奴)들과 함께 을 일으켜 전주를 40일 동안 점령하였다. / 전주 관노의 난(1182)지9-14-2-13
• 천민 출신인 이의민이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 1183국9-15-01
• 보조국사 지눌수선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 수선사(순천 송광사) 결사(1190)국9-20-06 지눌이곳에서 수선사 결사 운동을 펼쳤다. / 이곳:순천 수선사(순천 송광사) 1190지9-21-10 • ( ㉣ )는/은 『목우자수심결』을 지어 마음을 닦고자 하였다. / ㉣지눌지9-19-07 지눌이 이곳을 중심으로 수선사 결사 운동을 전개하였다. / 이곳:수선사(순천 송광사), 1190지9-18-03 수선사 결성을 제창하여 불교계의 개혁을 추진 하였다. / 지눌 수선사 결성(1190)지9-17-09 • 불교계를 개혁하기 위해 수선사 결사를 주도하였다. / 수선사 결사(1190) 지눌지9-16-08 • 거조암, 길상사 등에서 정혜결사를 주도하였다. / 지눌(1190)지9-17-2-08 한 마음(一心)을 깨닫지 못하고 한없는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 중생인데, 부처는 이 한 마음을 깨달았다. 깨닫는 것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오직 한 마음에 달려 있으니 이 마음을 떠나서 따로 부처를 찾을 수 없다. / • 권수정혜결사문(1190 지눌)지9-16-08 • (나)는 “정(定)은 본체이고 혜(慧)는 작용이다. 작용은 본체를 바탕으로 존재하므로 혜가 정을 떠나지 않고, 본체가 작용을 가져오게 하므로 정은 혜를 떠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였다. / (나)지눌지9-17-09 교종과 선종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 지눌: 선종 중심으로 교종 통합지9-17-09 먼저 깨치고 나서 후에 수행한다는 뜻은 못의 얼음이 전부 물인 줄은 알지만 그것이 태양의 열을 받아 녹게 되는 것처럼 범부가 곧 부처임을 깨달았으나 불법의 힘으로 부처의 길을 닦게 되는 것과 같다. / 지눌 수심결지9-16-08 • 하루는 가 같이 공부하는 사람 10여 인과 약속하기를, “마땅히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같은 모임을 맺도록 하자. 항상 선(禪)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는 데 힘쓰고, 예불하고 경전을 읽으며 힘들여 일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따라 경영한다. 인연에 따라 성품을 수양하고 평생을 호방하게 고귀한 이들의 드높은 행동을 좇아 따른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 그:지눌(1158~1210)지9-14-2-20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포섭하여 선종과 교종의 융합을 추구하였다. / 지눌지9-14-2-20 • 강진의 백련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불교 운동인 결사(結社)를 조직하였다. / X ⇒ 수선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불교 운동인 결사(結社)를 조직하였다. / 수선사 결사(1190 지눌), 백련사 결사(1216 요세)지9-14-2-20 • 정혜쌍수로 대표되는 결사운동을 일으켰다. / 수선사 결사(1190 지눌)지9-14-03 • 임인년 정월에 개경 보제사에서 열린 담선법회가 파한 연후에 ㉡___ 은(는) 동문 10여 인과 함께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림에 은둔하여 같은 모임을 맺자. 항상 선정을 익히고 지혜를 고르는 데 힘쓰고, 예불하고 경전을 읽으며 힘들여 일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각자 맡은 바 임무에 따라 경영한다.”라고 결의하였다. / ㉡지눌지9-13-15 • 순천 송광사에서 수선결사운동을 전개하였다. / 지눌지9-13-15 • 지금의 불교계를 보면, 아침저녁으로 하는 일들이 비록 부처의 법에 의지하였다고 하나, 자신을 내세우고 이익을 구하는데 열중하여 세속의 일에 골몰한다. 도덕을 닦지 않고 옷과 밥만 허비하니, 비록 출가하였다고 하나 무슨 덕이 있겠는가? / 지눌(1158~1210)법9-18-05 선을 중심으로 교학을 포용하고자 하였다. / 지눌(1158~1210)법9-18-05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였다. / 수선사 결사(1190 지눌)법9-17-07
• 불교와 유교 모두 도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다는 유·불 일치설을 주장하였다. / 혜심(1178~1234): 수선사의 제2세 사주지9-17-09 • 유교와 불교의 통합을 시도하며 유불 일치설을 주장하였다. / 혜심(1179~1234)법9-18-05
• 운문에서 난을 일으킨 후 초전의 효심과 연합하여 정부군과 대결하였다. / 김사미·효심의 난(1193) 운문(김사미의 난)지9-14-2-13 • 경주 지역 세력과 연합하여 신라 부흥을 주장하였다. / 김사미·효심의 난(1193)법9-18-16
• ★ (가)___는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이다. / (가)동명왕편(1193 이규보)국9-22-09 이규보동명왕편은 단군의 건국 과정을 다루고 있다. / X ⇒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구려 시조인 주몽의 건국 과정을 다루고 있다. 단군의 건국과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동명왕편(1193 이규보)국9-19-11 • 『동명왕편』 / 1193 이규보국9-18-19 고구려 계승의식을 강조하였다. / 동명왕편(1193 이규보)국9-16-01 고구려 계승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하였다. / 동명왕편(1193 이규보)국9-13-09 /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강조하였다. / 동명왕편(1193 이규보)지9-22-09 •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인 동명왕편을 저술하였다. / 동명왕편(1193 이규보)지9-16-15 고구려의 건국 영웅을 칭송한 영웅 서사시로서 고구려 계승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 동명왕편(1193 이규보)지9-14-2-19
• 서쪽 송나라는 이미 기울고 북쪽 오랑캐는 아직 잠자고 있네. 앉아서 문명의 아침을 기다려라, 하늘의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네. / 진화 : 이규보와 같은 시대의 문인국9-18-19
최충헌이 이의민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다. / 1196지9-21-09 봉사십조를 올려 사회개혁안을 제시하였다. / 봉사십조(1196 최충헌)국9-20-02 최충헌 집권 / 최충헌(집권 1196~1219)지9-16-16

신종(재위: 1197~1204) 무신정권 1170~1270
• 신종 원년 사노비 만적 등이 북산에서 땔나무를 하다가 공사의 노비들을 모아 모의하기를, “우리가 성 안에서 봉기하여 먼저 (가)___ 등을 죽인다. 이어서 각각 자신의 주인을 죽이고 천적(賤籍)을 불태워 삼한에서 천민을 없게 하자. 그러면 공경장상이라도 우리가 모두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가)최충헌, 만적의 난(1198):최충헌의 사노가 일으킨 난국9-20-02 / 경인⋅계사년 이후로 높은 벼슬이 천한 사람에게서 많이 나왔다. 공경장상(公卿將相)의 씨가 어찌 따로 있으랴.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만 어찌 육체를 괴롭히면서 채찍 밑에서 곤욕을 당할 수 있겠는가. …(중략)… 각자 그 주인을 죽이고 천민의 문서를 불살라 삼한에서 천인을 없애버리면, 우리 모두가 공경장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만적의 난(1198) 경인년(1170) 계사년(1173)지9-14-2-13 개경의 노비들이 서로 연락하여 난을 일으키려 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하였다. / 만적의 난(1198)지9-14-2-13 경계 이후 공경대부는 천예 속에서 많이 나왔다. 장상의 종자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찌 상전의 채찍 밑에서 힘겨운 일에 시달리기만 하겠는가. (중략) 모두 자신의 주인을 죽이고 천예들의 호적을 불살라서 삼한에 천인이 없게 하면 공경과 장상은 우리 모두 할 수 있다. - 고려사 - / 만적의 난(1198) 경계: 경인년(1170), 계사년(1173) 법9-18-16 개경에서 노비들을 모아서 노비 해방을 주장하였다. / 만적의 난(1198)법9-18-16 • 사노 만적 등 6인이 북산에서 나무하다가 공사 노비들을 불러 모의하였다. “요즈음 고관이 천민과 노비에서 많이 나왔다. 장수와 재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으랴, 때가 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우리가 왜 근육과 뼈를 괴롭게 하며 채찍 밑에서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여러 노비가 그렇게 여겼다. / 만적의 난(1198)법9-12-01

희종(재위: 1204~1211) 무신정권 1170~1270
최충헌이 신변 보호와 집권체제 강화를 위해 조직하였다. / 교정도감(1209)국9-14-15 • 국정을 총괄하는 교정도감이 처음 설치되었다. / 교정도감(1209)지9-1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