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
고려

고려 12세기(인종, 의종)


인종(재위: 1122~1146)
이자겸, 척준경이 말하기를 “이 예전에는 작은 나라여서 요와 우리나라를 섬겼으나, 지금은 갑자기 흥성하여 요와 송을 멸망시켰다. …(중략) …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선왕의 도이니, 마땅히 우선 사절을 보내야 합니다.” 라고 하니 (가)__이/가 그 의견을 따랐다. -『고려사』 - / (가)인종국9-19-03 이자겸척준경과 더불어 난을 일으켰다. / 이자겸의 난(1126)지9-21-09 • ㉠__의 요구에 따라 인종 때 이자겸은 이들과 군신 관계를 맺고자 하였다. / ㉠여진 이자겸의 난(1126)지9-14-2-08 • 왕의 측근 세력을 제거하고 인종을 감금하였다. / 이자겸의 난(1126)법9-17-16 • 왕이 어느 날 홀로 한참 동안 통곡하였다. 이자겸의 십팔자(十八字)가 왕이 된다는 비기(秘記)가 원인이 되어 왕위를 찬탈하려고 독약을 떡에 넣어 왕에게 드렸던바, 왕비가 은밀히 왕에게 알리고 떡을 까마귀에게 던져주었더니 그 까마귀가 그 자리에서 죽었다. - 고려사 / 이자겸의 난(1126)법9-13-04
서경파대화궁을 축조하였다. / 대화궁 축조(1128)법9-13-04
묘청의 난을 진압하였다. / 김부식, 묘청의 난(1135)지9-22-16 • 서경에 대화궁을 짓게 하고 칭제건원을 주장하였다. / 묘청의 난(1135)국9-19-03 • 신(臣)들이 서경의 임원역 지세를 관찰하니, 이곳이 곧 음양가들이 말하는 매우 좋은 터입니다. 만약 궁궐을 지어서 거처하면 천하를 병합할 수 있고 , 금나라가 폐백을 가지고 와 스스로 항복할 것이며, 36국이 모두 신하가 될 것입니다. / 묘청의 난(1135) 풍수지리설국9-17-18 / 서경 천도 운동의 배경이 되었다. / 묘청의 난(1135) 풍수지리설국9-17-18 • 고려시대에 묘청서경 천도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논리로 활용하였다. / 풍수지리 사상, 묘청의 난(1135)국9-16-17 묘청의 천도 운동에서 가 패하고 묘청이 이겼더라면 조선사는 독립적⋅진취적으로 진전하였을 것이니 이것이 어찌 일천년래 제일 사건이라 하지 아니하랴. / 그: 김부식, 조선사연구초(1924.10.13.~1925.3.16. 신채호)지9-16-15 서경 천도를 추진하였다. / 묘청의 난(1135)국9-15-08 • 임술일에 왕이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 나에게 불평을 품은 나머지 당돌하게 병란을 일으켜 관원들을 잡아 가두었으며 천개(天開)라는 연호를 표방하고 군호(軍號)를 충의(忠義)라고 하였으며 공공연히 병졸들을 규합하여 서울을 침범하려 한다. 사변이 뜻밖에 발생하여 그 세력을 막을 도리가 없다.” - 고려사 - / 묘청의 난(1135)법9-17-16 칭제건원금국 정벌을 주장하였다. / 묘청의 난(1135)법9-17-16 묘청은 이곳으로 천도하여 칭제건원정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 이 곳 : 서경(평양)법9-17-22 / 서경 천도를 둘러싸고 대결하였다. / 묘청(서경파)과 김부식(개경파), 묘청의 난(1135.1.~1136.2.)법9-15-07 묘청서경 천도 운동을 벌였다. / 묘청의 난(1135.1.~1136.2.)법9-14-09
유교적 사관에 기초하여 기전체로 서술하였다. / 삼국사기(1145 김부식)국9-19-12 도덕적 합리주의를 표방하였다. / 삼국사기(1145 김부식)국9-16-01 /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하여 기전체로 서술하였다. / 삼국사기(1145 김부식)국9-13-09 / 유교적인 합리주의 사관에 따라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 삼국사기(1145 김부식)지9-21-11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하여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지9-15-14 • 삼국의 역사를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하여 기전체로 서술하였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지9-14-2-19 유교 사관에 입각한 삼국사기가 편찬되었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법9-16-06
기전체로 서술되어 본기, 지, 열전 등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 국9-12-13 김부식기전체 역사서인 『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지9-12-10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법9-22-23
•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하는 김부식 / 삼국사기(김부식 1145)법9-20-04 김부식은 당시 대표적인 성리학자였다. / X ⇒ 성리학은 고려 충렬왕 때 도입법9-20-12 김부식삼국사기를 편찬하였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법9-14-10 • 『삼국사기』 / 삼국사기(1145 김부식)국9-18-19 • 김부식이 진삼국사기표를 지었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지9-13-08
•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단군 신화가 수록되어 있다. / X ⇒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단군 신화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삼국사기(1145 김부식)지9-22-09 / • 고구려 계승 의식보다는 신라 계승 의식이 좀 더 많이 반영되었다고 평가된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 국9-12-13
• (가)___은(는)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로 고려 인종 때 편찬되었다. 본기 28권, 연표 3권, 지 9권, 열전 10권 등 총 5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가)삼국사기(1145 김부식)국9-16-01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역사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 국9-12-13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법9-22-23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최고(最古)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지9-16-15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관찬 역사서이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법9-12-24
• ★ (가)___ 역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어 왕에게 바쳤다. “성상 전하께서 옛 사서를 널리 열람하시고, ‘지금의 학사 대부는 모두 오경과 제자의 책과 진한(秦漢) 역대의 사서에는 널리 통하여 상세히 말하는 이는 있으나, 도리어 우리나라의 사실에 대하여서는 망연하고 그 시말(始末)을 알지 못하니 심히 통탄할 일이다. 하물며 신라 고구려 백제가 나라를 세우고 정립하여 능히 예의로써 중국과 통교한 까닭으로 범엽의 한서 나 송기의 당서 에는 모두 열전이 있으나 국내는 상세하고 국외는 소략하게 써서 자세히 실리지 않았다. (중략) 일관된 역사를 완성하고 만대에 물려주어 해와 별처럼 빛나게 해야 하겠다.’라고 하셨다.” / (가)삼국사기(1145 김부식)국9-22-09 • 왕께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 경전과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사실에 이르러서는 잘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이다. 중국 역사서에 우리 삼국의 열전이 있지만 상세하게 실리지 않았다. 또한, 삼국의 고기(古記)는 문체가 거칠고 졸렬하며 빠진 부분이 많으므로, 이런 까닭에 임금의 선과 악, 신하의 충과 사악, 국가의 안위 등에 관한 것을 다 드러내어 그로써 후세에 권계(勸戒)를 보이지 못했다. 마땅히 일관된 역사를 완성하고 만대에 물려주어 해와 별처럼 빛나도록 해야 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지9-21-11 • 신 부식은 아뢰옵니다. 옛날에는 여러 나라들도 각각 사관을 두어 일을 기록하였습니다. … 해동의 삼국도 지나온 세월이 장구하니, 마땅히 그 사실이 책으로 기록되어야 하므로 마침내 늙은 신에게 명하여 편집하게 하셨사오나, 아는 바가 부족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 삼국사기(김부식 1145) 국9-12-13

의종(재위: 1146~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