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
조선 19세기 - 방곡령(1889)~청일전쟁(1894)

조선 19세기고종(1889~1894)


26대 고종 (재위: 1863~1896_34년) / 12세 즉위 / 방곡령(1889)~청일전쟁(1894)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이 곡물 수출을 막는 방곡령을 내렸다. / 방곡령(1889.10.1.)국9-19-07 함경도 방곡령 사건으로 일본과 외교적 마찰이 일어났다. / 방곡령(1889.10.1.)지9-19-12
• 동학교도가 궁궐 앞에서 교조 신원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 삼례집회(1892.11.)국9-18-09 삼례집회(교조신원운동) / 삼례집회(1892.11.)국9-15-04 • 동학교도들이 전라도 삼례에서 교조 신원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였다. / 삼례집회(1892.11.)법9-22-07
고부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쌓아 수세를 강제로 거두었다. / 고부민란(1894.1.)국9-19-13 • 방금 안핵사 이용태의 보고에 따르면 “죄인들이 대다수 도망치는 바람에 조사하지 못하였다.”라고 하였다. 「승정원일기」 / 고부민란(1894.1.10.)국9-18-09 고부관아습격 / 고부민란(1894.1.10)국9-15-04 고부봉기 발생 / 고부민란(1894.1.10.)법9-16-15
• 조선 정부가 조병갑을 파면하고 박원명을 고부 군수로 임명하였다. / 1894.1법9-22-07
• 안핵사 이용태농민을 동학도로 몰아 처벌하였다. / 1894.2.국9-19-13
동학농민운동(1894) /법9-13-08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법9-13-16 • 천주교의 평등 사상을 배경으로 하였다. / 동학농민운동(1894)법9-12-01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고, 일본과 서양국가의 침략을 막아내자는 주장을 강하게 폈다. / 동학농민운동(1894)지9-14-2-14
백산에서 전봉준보국안민을 위해 궐기하라는 통문을 보냈다. / 제1차 농민봉기(1894.3.) 백산집결(1894.3.) 국9-18-09 보국안민, 제폭구민의 대의를 위해 봉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 제1차 농민봉기(1894.3.)지9-16-12 전봉준은 금구 원평에 앉아 (전라)우도에 호령하였으며, 김개남은 남원성에 앉아 좌도를 통솔하였다. 「갑오약력」 / 제1차 농민봉기(1894.3.)국9-18-09 • (가) 우리가 의로운 깃발을 들어 이곳에 이름은 그 뜻이 결 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속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양반과 탐 학한 관리의 목을 베고 밖으로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몰고자 함이다. / (가)백산창의문(1894.3)법9-22-07 백산집결 / 1894.3.법9-16-15 • 첫째,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가축을 잡아먹지 말라. (不殺人 不殺物)
둘째, 충효를 다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 (忠孝雙全 濟世安民)
셋째, 일본 오랑캐를 몰아내고 나라의 정치를 바로 잡는다. (逐滅倭夷 澄淸聖道)
넷째, 군사를 몰아 서울로 쳐들어가 권신귀족을 모두 제거한다. (驅兵入京 盡滅權貴)
- 정교, 『대한계년사』 -
/ 백산집결(1894.3.), 제1차 농민봉기(1894.3.), 대한계년사(정교, 편년체, 1684~1910까지의 역사서)법9-15-16

• 농민군이 황토현에서 감영군을 격파하였다. / 1894.4.7.국9-19-13 황토현 전투 / 1894.4.7.국9-15-04 황토현 전투 / 1894.4.7.법9-16-15
전주성점령 / 1894.4.27.국9-15-04 • 동학의 무리가 금구현을 거쳐 전주 삼천에 주둔하였다가 이날 전주부에 돌입한 것이다. 전주감사 김문현 등은 동학의 무리가 갑자기 뛰어듦을 보고 군졸을 급히 동원하여 전주부민과 더불어 사문(四門)을 파수하였으나 동학의 무리가 별안간 사방을 포위하고 기세가 심히 맹렬하매 성을 지키는 군졸 등이 놀라 흩어져 버렸다. / 전주성 점령(1894.4.27.)법9-16-15
• 청군과 일본군의 개입으로 사태가 악화되자 농민군은 폐정 개혁을 제시하며 정부와 (가)___ 을/를 맺었다. 이에 따라 농민군은 해산하였다. / (가)전주화약(1894.5.8.)국9-19-13 전주화약 이후 조선 정부는 청·일 군대의 철수를 요청하였다. / 전주화약(1894.5.8.)지9-15-16 • 동학 농민군과 관군이 전주 화약을 체결하였다. / 전주화약(1894.5.8.)법9-22-07 • 농민들이 집강소를 설치하고 폐정 개혁을 추진하였다. / 집강소 설치(1894.5.)법9-16-14 • 전주에서 해산한 후 집강소를 설치하고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였다. / 집강소 설치(1894.5.) 법9-15-16 토지는 평균으로 나누어 경작하게 할 것. / 폐정개혁안(1894.5.8.) 전주화약(1894.5.8.)법9-15-20 • 동학 농민 운동은 안으로 정치와 사회 개혁을 이루고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을 막으려 했던 대규모 농민 운동이었다. 비록 정부와 일본군의 공격으로 실패하였지만 농민군의 반봉건적 개혁 요구는 갑오개혁에 영향을 끼쳐 전통적 봉건 질서의 붕괴를 촉진하였다. 그리고 반침략적 정신은 의병 운동에 투영되어 외세에 저항하는 구국 무장 투쟁으로 이어졌다. / 폐정개혁안(1894.5.8.)법9-14-18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한다. / 폐정개혁안(1894.5.8.)법9-14-18 노비 문서는 불태워 버린다. / 반봉건적 개혁 요구, 폐정개혁안(1894.5.8.)법9-14-18 왜적(倭賊)과 통하는 자는 엄징한다. / 폐정개혁안(1894.5.8.)법9-14-18 토지를 평균으로 분작한다. / 폐정개혁안(1894.5.8.)법9-13-18 • 전주성을 점령하고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었다. / 전주화약(1894.5.7.)법9-12-17
• 조선 정부가 개혁 기구인 교정청을 설치하였다. / 교정청(1894.6.11.)법9-22-07 • 정부에 지조법 개혁을 요구하여 교정청을 통해 실시되었다. / 지조법 개혁: 갑신정변(1884), 교정청(1894.6.11.)법9-15-16
• 일본군과 함께 경복궁을 침범하였다. / 갑오변란(1894.7.23.양력 6.21.음력)국9-16-05 •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 갑오변란(1894.7.23.)국9-15-04 • 일본군이 경복궁을 점령한 후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의 농민군이 연합하였다. / 갑오변란(1894.7.23.)지9-15-16
청·일 전쟁의 발발 / 1894.7.25.국9-15-04 청·일 전쟁 발발 직후에도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집강소가 운영되었다. / 청일전쟁(1894.7.25.~1895.4.17.)지9-15-16 청일전쟁 발발 / 청일전쟁(1894.7.25.~1895.4.17.)법9-16-15 청일전쟁(1894) /법9-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