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
조선 19세기 - 을미개혁(1895) ~ 독립협회(1896)

조선 19세기고종(1895~1896)


26대 고종 (재위: 1863~1896_34년) / 12세 즉위 / 을미개혁(1895) ~ 독립협회(1896)
을미사변 발발 / 음력(1895.8.20.) 양력(1895.10.8.)국9-19-07 을미사변 / 음력(1895.8.20.) 양력(1895.10.8.)지9-22-11 • 일본 공사가 주동이 되어 명성황후시해하였다. / 음력(1895.8.20.) 양력(1895.10.8.)법9-15-06 명성황후 시해 / 음력(1895.8.20.) 양력(1895.10.8.)법9-13-16
태양력을 사용하고 건양이라는 연호를 제정하였다.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1895.8.20.~1896.2.11.)지9-13-11 친위대, 진위대를 설치하였다.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1895.8.20.~1896.2.11.)법9-19-07 • 중앙에 친위대, 지방에 진위대를 설치하였다.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1895.8.20.~1896.2.11.)법9-18-17 태양력 도입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1895.8.20.~1896.2.11.)법9-16-13 단발령 철회를 논의하는 관리들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1895.8.20.~1896.2.11.)법9-15-06 • 제1조 국내의 육군을 친위진위 2종으로 나눈다.
제2조 친위는 경성에 주둔하여 왕성 수비를 전적으로 맡는다.
제3조 진위는 부(府) 혹은 군(郡)의 중요한 지방에 주둔하여 지방 진무와 변경 수비를 전적으로 맡는다.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1895.8.20.~1896.2.11. 김홍집 내각)법9-13-16 /
태양력을 사용하고 종두법을 시행한다.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1895.8.20.~1896.2.11.)법9-13-18 / 을미개혁(1895) /법9-13-22 • 서울에 친위대, 지방에 진위대를 설치하였다. /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1895.8.20.~1896.2.11.)법9-12-04
단발령의 실시로 위정척사 사상에 바탕을 둔 의병 운동이 시작되었다. / 을미의병(1895.10.) 단발령(1895.11.) 국9-17-15 • 충의를 위해 역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유생들이 주동하였다. / 의병운동 (1차 1895~1896, 2차 1905~1910)지9-16-12 고종해산 권고 조칙을 내리자 대부분 해산하였다. / 을미의병(1895.10.)법9-21-02 명성황후 시해단발령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 을미의병(1895.10.)법9-13-22 단발령왕비 시해를 계기로 의병 운동을 일으켰다. / 을미의병(1895.10.)법9-12-17
정동구락부 세력이 주도하였다. / 춘생문 사건(1895.11.28.) 정동구락부(1895년경)국9-16-05 /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아관파천(1896.2.11.)국9-17-07 이곳은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집이 있던 곳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뒤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정릉동 행궁으로 불리었고, 광해군 때는 경운궁이라 하였다. 아관파천 후 고종이 이곳에 머물렀다. 주요 건물로는 중화전, 함녕전, 석조전 등이 있다. / 이곳:덕수궁 아관파천(1896.2.11.)지9-20-05 • (가)의 공사관으로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이 피신하였다. / (가)러시아 아관파천(1896.2.11.)법9-20-06 아관파천(1896)법9-19-01 •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겼다. / 아관파천(1896)법9-15-06 아관파천(1896) /법9-15-17 아관파천(1896) /법9-12-02
• 서재필을 중심으로 민중 계몽을 위한 독립신문이 창간되었다. / 1896.4.7.국9-17-07 국민 계몽을 위해 회보를 발간하고 만민공동회 등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 1896.4.7. 회보(독립신문) 발간, 만민공동회(1898.11.5.)지9-20-15 • 『독립신문』의 창간을 지원하였다. / 독립신문 창간(1896.4.7.)지9-19-13 • 정부에서 일하는 관리는 임금의 신하요 백성의 종이니 위로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섬기는 것이라. …(중략)… 바라건대 정부에 계신 이들은 관찰사나 군수들을 자기들이 천거하지 말고 각 지방 인민으로 하여금 그 지방에서 뽑게 하면, 국민 간에 유익한 일이 있는 것을 불과 1∼2년 동안이면 가히 알리라. - 독립신문, 1896. 4. 14. - / 국민 참정권, 독립신문 창간(1896.4.7.)법9-14-25
•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열강의 이권 침탈이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서재필 등은 (가)___ 을/를 만들었다. (가)___ 은/는 고종에게 자주독립을 굳건히 하고 내정 개혁을 단행하라는 내용이 담긴 상소문을 제출하였으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외국의 간섭과 일부 관리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였다. / (가)독립협회(1896.7.2.)국9-22-17 • 1897.8.29. : 조선에 급선무는 인민의 교육, 1897.9.5. : 도로 수정하는 것이 위생에 제일 방책, 1897.12.26. : 인민의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을 개명케 하려면 우리나라 신문지며 다른 나라 신문지들을 널리 반포하는 것이 제일 긴요함 / 독립협회(1896.7.2.)지9-20-15 자주 국권, 자유 민권, 자강 개혁 등을 내세우며 의회 설치 운동을 전개하였다. / 독립협회(1896~1898)지9-14-2-18 국민 참정권의 실현 / 독립협회(1896)법9-14-25 회원 김정현이 급히 배재학당으로 가서 교사 이승만 및 학도 40∼50인과 함께 경무청 앞에 갔고 다른 회원들은 백목전 도가(都家)*에 모여 윤시병을 만민공동회 회장으로 삼아 경무청 앞으로 갔다. 이때 인민들이 다투어 모인 자가 수천인이었다. - 대한계년사
*도가: 상인들이 모여 의논하는 집 / 회원: 독립협회(1896.7.2.)법9-12-16

• 지방 행정 체제를 23부에서 13도로 개편하였다. / 13도 개편(1896) 법9-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