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
조선(태조, 정종)

조선 14세기(태조, 정종)


1대 태조(재위: 1392~1398_7년) / 57세 즉위
이성계는 즉위 직후 명에 사신을 보내어 조선의 건국을 알리고, 자신의 즉위를 승인해줄 것과 국호의 제정명에 요청하였다. 명으로부터 승인을 받아 국내의 정치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후 조선은 명과 외교적 갈등을 빚었다. /지9-12-06 조선으로 넘어온 여진인의 송환을 명이 요구함으로써 생긴 갈등 /지9-12-06 • 조선이 명에 보낸 외교문서에 무례한 표현이 있다는 명의 주장에 따른 갈등 /지9-12-06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었다는 중국 측 기록을 둘러싼 갈등 /지9-12-06 • 조선의 조공에 대해 명 황제가 내린 회사품의 양과 가치가 지나치게 적은 데 따른 갈등 / X ⇒조선의 조공에 대해 명 황제가 내린 회사품의 양과 가치가 지나치게 [많은] 데 따른 갈등지9-12-06
공양왕 폐위, 이성계 즉위(1392) /법9-19-19
는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왕조를 개창한 공으로 개국 1등 공신이 되었으며, 의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재상 중심의 관료정치를 주창하였다. 그리고 『불씨잡변』을 저술하여 불교의 사회적 폐단을 비판하였다. / 그 : 정도전(1392~1398)국9-17-12 정도전은 성리학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사상을 포용하였으며, 특히 『춘추』를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중요하게 여겼다. / X ⇒ 정도전은 불교를 배척하였으며, 특히 『성리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중요하게 여겼다.국9-14-18
• 『조선경국전』을 편찬하여 왕조의 통치 규범을 마련하였다. / 1394.3.국9-17-12 • 임금의 직책은 한 사람의 재상을 논정하는 데 있다 하였으니, 바로 총재(冢宰)를 두고 한 말이다. 총재는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여 만민을 다스리는 것이니 직책이 매우 크다. 또 임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음과 현명함이 있고 강함과 유약함의 차이가 있으니, 옳은 일은 아뢰고 옳지 않은 일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대중(大中)의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相)이라 하니, 곧 보상(輔相)한다는 뜻이다. / 의정부 서사제, 조선경국전(정도전, 1394.3.) 국9-13-10 •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였다. / 조선경국전(정도전, 1394.3.)지9-13-08 /
• 정도전의 요동정벌 추진 /지9-20-12 와 남은이 임금을 뵈옵고 요동을 공격하기를 요청하였고, 그리하여 급하게 「진도(陣圖)」 를 익히게 하였다. 이보다 먼저 좌정승 조준이 휴가를 받아 집에 있을 때, 그와 남은이 조준을 방문하여, “요동을 공격하는 일은 지금 이미 결정 되었으니 공(公)은 다시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하였다. / 그: 정도전, 요동정벌지9-19-11 • 정도전의 요동 정벌 추진 /법9-19-19 • 맹자의 역성혁명론조선건국에 적용하였다. / 정도전지9-19-11 한양 도성의 성문과 궁궐 등의 이름을 지었다. / 정도전지9-19-11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 1394.8.지9-22-04 • 도성 밖 10리 안에는 개인의 무덤을 쓰거나 벌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다. / 도성:한양지9-17-11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경복궁, 종묘 등을 건설하였다. / 한양천도(1394)지9-14-2-16
• 유교사상인 인·의·예·지 덕목을 담아 도성 4대문의 이름을 지었다. /지9-17-11 경복궁 근정전의 이름은 정도전이 지었다. /지9-17-11 • 경복궁의 동쪽에 사직이, 서쪽에 종묘가 각각 배치되었다. / X ⇒ 경복궁의 동쪽에 [종묘]이, 서쪽에 [사직]가 각각 배치되었다.지9-17-11 경복궁 / 경복궁 1차 완공(1395.9.)지9-20-05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 / 1395법9-16-13
• 『경제문감』을 저술하여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였다. / 정도전, 경제문감(1395)지9-19-11 정도전고려국사를 편찬하였다. / 1395법9-12-21
왕자의 난 때 죽임을 당했다. / 정도전, 1차 왕자의 난(1398)지9-22-17 • 참찬문하부사 하륜 등이 청하였다. “정몽주의 난에 만일 그가 없었다면, 큰일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을 것이고, 정도전의 난에 만일 그가 없었다면, 또한 어찌 오늘이 있 었겠습니까? …… 청하건대, 를 세워 세자를 삼으소서.”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의 말이 옳다.”하고, 드디어 도승지에게 명하여 도당에 전지하였다. “…… 나의 동복(同腹) 아우인 그는 개국하는 초에 큰 공로가 있었고, 또 우리 형제 4, 5인이 성명(性命)을 보전한 것이 모두 그의 공이었다. 이제 명하여 세자를 삼고, 또 내외의 여러 군사를 도독하게 한다.” / 그: 태종, 1차 왕자의 난(1398.8.)법9-22-08 제1차 왕자의 난 발생 / 1398.8.법9-19-19

2대 정종(재위: 1398~1400_2년) / 42세 즉위
• 도평의사사를 개편하여 의정부설치하였다. / 의정부(1400)지9-19-08 의정부 서사제의 시행 / 의정부 설치(1400)국9-13-10 • 도평의사사를 폐지하고 의정부설치하였다. / 의정부 설치(1400)지9-14-2-16 • 6조는 각기 모든 직무를 먼저 의정부에 품의하고, 의정부는 가부를 헤아린 뒤에 왕에게 아뢰어 (왕의) 전지를 받아 6조에 내려 보내어 시행한다. 다만 이조⋅병조의 제수, 병조의 군사업무, 형조의 사형수를 제외한 판결은 종래와 같이 각 조에서 직접 아뢰어 시행하고 곧바로 의정부에 보고한다. / 의정부 서사제, 의정부 설치(1400) 법9-17-12
도당으로 불렸으며 조선 건국 초에 폐지되었다. / 도당: 도평의사사 폐지(1400)지9-1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