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
일제강점기 1934~1940

일제강점기 (1910.8.22. ~ 1945.8.15.)


일제강점기 1934~1940
• ‘조선얼’을 강조하며 ‘조선학 운동’을 펼쳤다. / 1934 정인보국9-19-19 • 『여유당전서』를 발간하여 조선후기 실학자들을 재평가하였다. / 정인보, 안재홍 『여유당전서』(1934~1938 정약용)지9-17-02
• 『진단학보』를 발간한 진단학회의 발기인으로 활동하였다. / 진단학회(1934.5.7.) 손진태국9-17-19 실증사학의 입장에서 연구하는 진단학회를 조직하였다. / 진단학회(1934.5.7.) 손진태, 이병도지9-20-03 실증사학의 영향을 받았다. / 진단학회(1934.5.7.)법9-21-16 진단학회를 결성하여 진단학보를 발간하였다. / 진단학회(1934.5.7.)법9-21-16 진단 학회 창립을 준비하는 학자 / 진단학회(1934.5.7.)법9-16-18
• 민족유일당 운동 차원에서 조선혁명당이 참가하였다. / 민족유일당 운동(민족혁명당 1935.7.5.), 조선혁명당 결성(1929.9.)국9-21-17 민족혁명당 창당에 가담하였다. / 1935.7.25. 의열단 가담국9-16-15 민족혁명당 창당 / 1935.7.5. 김규식 등이 중국 난징에서 조직한 독립운동 정당국9-14-05 한국독립당, 조선혁명당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결성하였다. / 민족혁명당 결성(1935.7.5.) 지9-19-16 조선민족혁명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용대를 이끌었다 / 조선민족혁명당(1935.7.5.)지9-18-17
• 『5천 년간 조선의 얼』이라는 글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였다. / 1935~1936 정인보국9-17-19 • 『5천 년간 조선의 얼』이라는 글을 동아일보에 연재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 5천 년간 조선의 얼(1935~1936) 정인보지9-17-02 • 『5천 년간 조선의 얼』이라는 글을 써서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 5천 년간 조선의 얼(1935~1936 정인보 동아일보)지9-14-05
한국국민당을 통한 정당정치 실시가 결정되었다. / 한국국민당(1935.11. 항저우 김구)국9-17-04 • ‘삼균주의’에 입각한 한국국민당을 결성하였다. / 한국국민당(1935.11. 항저우 김구)지9-20-16
동북 항일 연군을 중심으로 치열한 항일 유격전이 전개되었다. / 동북항일연군 설립(1936.3.) 국9-13-04
• 함경남도 보천보의 일제 통치 기구를 공격하였다. / 보천보 전투(1937.6.4.) : 동북항일연군, 김일성법9-19-09
중일전쟁 / 1937.7.7.국9-21-12 • 중국 본토에서 중일 전쟁이 발발하였다. / 1937.7법9-21-01 • 1937년 중∙일 전쟁 / 1937.7법9-20-19
• 일본에 충성하자는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게 하였다. / 1937.10.국9-21-12 • 학생들이 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였다. / 1937.10.법9-16-19
• 중일 전쟁이 발발하자 조선 민족 전선 연맹을 결성하였다. / 조선민족전선연맹(1937.12. 중국 난징, 김원봉)법9-19-09
• 아침마다 궁성요배를 강요하였다. / 1938국9-21-12
육군특별지원병령을 제정하여 지원병을 선발하였다. / 1938.2.22.국9-18-08
• ★전쟁 물자 동원을 내용으로 한 국가총동원법이 적용되었다. / 1938.4.1.국9-22-11 • 제4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 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서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도록 할 수 있다.
제7조 정부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노동 쟁의의 예방 혹은 해결에 관한 명령, 작업소 폐쇄, 작업 혹은 노무의 중지 … (중략) … 등을 명할 수 있다. / 국가총동원법(1938.4.1.)국9-18-08
• 제4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 상 필요할 때에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 / 국가총동원법(1938.4.1.)지9-15-18 • 가)____
제4조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 단 병역법의 적용을 방해하지 않는다.
제7조 노동 쟁의의 예방 혹은 해결에 관하여 필요한 명령을 내리거나 작업소의 폐쇄, 작업 혹은 노무의 중지 등 노동 쟁의에 관한 행위의 제한 혹은 금지를 행할 수 있다.
제8조 물자의 생산⋅수리⋅배급⋅양도 기타의 처분, 사용⋅소비⋅소지 및 이동에 관하여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 가)국가총동원법(1938.4.1.)법9-21-01
국가총동원법이 시행되었다. / 국가총동원법(1938.4.1.)법9-16-19 • 제1조: 국가 총동원이란 전시에 국방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전력을 가장 유효하게 발휘하도록 인적 및 물적 자원을 운용하는 것이다.
제4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할 때에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제국 신민을 징용하여 총동원 업무에 종사하게 할 수 있다.
제8조: 정부는 전시에 국가 총동원상 필요할 때에는 칙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물자의 생산, 수리, 배급, 양도, 기타의 처분, 사용, 소비, 소지 및 이동에 관하여 필요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 국가총동원법(1938.4.1.)법9-14-07

• 몸뻬를 입은 여성들이 근로보국대에서 강제 노동을 하였다. / 몸빼(1939) 근로보국대 설립(1938.6.11.)국9-18-17
• 마을에 애국반을 편성하여 일상생활을 통제하였다. / 애국반(1938.7.7.)지9-15-18
조선민족전선연맹이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창설하였다. / 조선의용대 창설(1938.10.10.)국9-19-09 조선의용대 창설 / 1938.10.10.국9-14-04 • (가)___는 조선 의용대를 결성하였고, (나)___는 ‘국혼’을 강조하였다. / (가)김원봉 조선의용대(1938.10.) (나)박은식지9-22-20 • 조선민족혁명당을 조직하고 조선의용대를 이끌었다 / 조선의용대(1938.10. 김원봉)지9-18-17 • 중국 관내에서 조직된 최초 한국인 군사 조직이었다. / 조선의용대(1938.10. 한커우)지9-13-12 • 탐구 주제: 조선 의용대, 중국 국민당과 연합하다! 인물: 김원봉 / 조선의용대(1938.10. 김원봉)법9-19-25 • 1940년대에 옌안으로 이동하였다. / 조선의용대(1938.10. 김원봉)법9-18-23 • 중국 한커우[漢口]에서 이 부대가 조직되었다. 부대는 1개 총대, 3개 분대로 편성되었는데 100여 명의 대원은 대부분 조선 민족혁명당원이다. 총대장은 황포 군관 학교 제4기 출신인 진국빈이며, 부대는 대일 선전 공작과 대일 유격전을 수행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 조선의용대(1938.10. 김원봉)법9-12-22
• ‘조선심’의 개념을 중시하고 한글을 그 결정체로 보았다. / 문일평(1888~1939)지9-14-05
• 여성에게 작업복인 ‘몸뻬’라는 바지의 착용을 강요하였다. / 몸빼(1939)지9-15-18 몸뻬를 입은 여성들이 근로보국대에서 강제 노동을 하였다. / 몸빼(1939) 근로보국대 설립(1938.6.11.)국9-18-17
국민징용령을 공포하여 강제적인 노무 동원을 실시하였다. / 국민징용령(1939.7.8.)국9-18-08 • 정신대는 국민징용령에 근거한 조직이었다. / X ⇒ 정신대는 여자정신대근무령(1944.8.23.)에 근거한 조직이었다. 국민징용령(1939.7.8.)지9-19-17 국민 징용령을 근거로 한국인이 공장에 강제 동원되었다. / 국민징용령(1939.7.8.)법9-16-19
물자 공출 장려를 목표로 결성하였다. / 공출제도(1940)지9-19-17 • 쌀·잡곡에 대한 배급제도와 공출제도가 실시되었다. / 공출제도(1940)지9-15-17 공출제도를 강화하여 놋그릇, 농기구까지 수탈하였다. / 공출제도(1940)지9-13-13
• ★창씨개명 조치가 시행되었다. / 창씨개명(1940.2.)국9-22-11 • 일본식 성과 이름으로 고치는 창씨개명을 시행하였다. / 창씨개명(1940.2.11.)지9-15-18 • 김군과 그의 아버지는 경찰서에 가서 새로운 이름을 등록해야 했다. 새 이름은 귀에 설게 들렸다. ‘이와모토’ 새 이름을 입에 담아 보았다. 우리의 새 이름, 나의 새 이름, ‘이와’ - 암석(岩), ‘모토’ - 토대(本), ‘이와모토’ - 岩本. ‘그래, 이게 우리의 다른 이름, 일본식 이름이야.’ -재미 동포 리처드 김의 자전적 소설- / 창씨개명(1940.2.11.)법9-16-19
• 한글을 사용하는 신문과 잡지를 강제 폐간시켰다. / 조선일보, 동아일보 폐간(1940.8.)법9-14-07
대한민국 임시정부1940년 충칭에서 한국 광복군을 창설 / 한국 광복군(1940.9.17.)국9-14-04 • 총사령에 이청천, 참모장에 이범석을 선임하였다. / 한국 광복군(1940.9.17.)국9-14-04 임시정부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결성하였다. / 한국 광복군(1940.9.17.)지9-19-16 • 중국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하였다. / 한국 광복군(1940.9.17.)지9-17-2-19 대한민국 임시 정부지청천을 총사령으로 하는 한국 광복군을 창설하였다. / 한국광복군 창설(1940.9.17.)지9-14-10 • 이번 연합군과의 작전에 모든 운명을 거는 듯하였다. 주석(主席)과 우리 부대의 총사령관이 계속 의논하는 것을 옆에서 들었기 때문에 더욱 일의 중대성을 절감하였다. 드디어 시기가 온 것이다! 독립 투쟁 수십 년에 조국을 탈환하는 결정적 시기가 온 것이다. 이때의 긴장감은 내가 일본 군대를 탈출할 때와는 다른 긴장감이었다. 목적은 같으나 그때는 막연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드는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조국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장정』- / 우리 부대: 한국 광복군 창설(1940.9.17. 충칭)지9-13-12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정부가 공포한 군사 조직법에 의거하여 중화민국 총통 장개석 원수의 특별 허락으로 중화민국 영토 내에서 (가)___ 을(를) 창설함을 선포한다. 중화민국 국민과 합작하여 우리 두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자 공동의 적인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타도하기 위하여 연합군의 일원으로 항전을 계속한다. / (가)한국 광복군(1940.9.17.)법9-14-20
•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김구를 주석으로 하는 단일 지도 체제를 만들고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제정하였다. / 단일지도체제(1940.10.) 대한민국 건국 강령(1941.11.)국9-20-20 주석⋅부주석 체제하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주석을 역임 하였다. / 1940.10. 김구국9-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