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원
일제강점기 1941~1945

일제강점기 (1910.8.22. ~ 1945.8.15.)


일제강점기 1941~1945
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이 제정⋅공포되었다. / 1941.2.12. 제정 공포법9-21-01
• ★초등 교육 기관의 명칭이 국민학교로 변경되었다. / 국민학교(1941.2.28.)국9-22-11 • 황국 신민 의식을 강화하고자 소학교를 국민학교로 개칭하였다. / 국민학교(1941.2.28.)국9-21-12 • 소학교 대신 국민 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토록 하였다. / 초등학교(1941.2.28.)법9-14-07
금속류회수령을 제정하여 주요 군수 물자를 공출하였다. / 1941.9.국9-18-08
대한민국 건국 강령이 상정되었다. / 1941.11.28. 대한민국 임시정부국9-21-17 •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김구를 주석으로 하는 단일 지도 체제를 만들고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제정하였다. / 대한민국 건국 강령 제정 : 1941.11.28.국9-20-20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건국강령이 채택되었다. / 삼균주의(1918 조소앙) 건국강령(1941.11.)국9-17-04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대한민국 건국 강령」을 발표하였다. / 대한민국 건국 강령 제정 : 1941.11.28.국9-15-20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건국 강령을 제정하였다. / 대한민국 건국 강령 제정 : 1941.11.28.국9-13-08 • 건국 시기의 헌법상 경제체계는 국민 각개의 균등생활 확보 및 민족 전체의 발전 그리고 국가를 건립 보위함과 연환(連環)관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다음에 나오는 기본 원칙에 따라서 경제 정책을 집행하고자 한다.
가. 규모가 큰 생산기관의 공구와 수단 …(중략)… 은행⋅전신⋅교통 등과 대규모 농⋅공⋅상 기업 및 성시(城市)공업 구역의 주요한 공용 방산(房産)은 국유로 한다.
나. 적이 침략하여 점령 혹은 시설한 일체 사유자본과 부역자의 일체 소유자본 및 부동산은 몰수하여 국유로 한다.
/ 대한민국 건국 강령 제정(1941.11.28. 대한민국 임시정부)지9-19-15
• 우리나라의 건국정신은 삼균제도(三均制度)의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선조들이 분명히 명한 바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 하야 흥방보태평(興邦保泰平)하리라 하였다. 이는 사회 각층 각급의 지력과 권력과 부력의 향유를 균평하게 하야 국가를 진흥하며 태평을 보유(保維)하려 함이니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하자는 우리 민족의 지킬 바 최고 공리(公理)임 / 조소앙의 삼균주의, 1941.11.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으로 공포지9-17-18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주장하였다. / 삼균주의(균권, 균부, 균학) 조소앙지9-17-18 •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건국강령을 발표하였다. / 대한민국 건국 강령 제정(1941.11.28.)지9-15-06 삼균제도를 골자로 한 헌법을 실시하여 정치와 경제와 교육의 민주적 시설로 실제상 균형을 도모하며 전국의 토지 와 대생산기관의 국유가 완성되고 전국의 학령 아동 전체가 고급교육의 면비수학(무상교육)이 완성되고 보통선거가 구속 없이 완전히 실시되어 …… 자치조직과 행정조직과 민중단체와 민중조직이 완비되어 삼균제도가 배합 실시되고 경향 각층의 극빈 계급에게 물질과 정신상 생활 정도와 문화 수준이 제고 보장되는 과정을 건국의 제2기라 함. / 대한민국 건국 강령(1941.11.)법9-19-09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한 건국 강령이 공포되었다. / 대한민국 건국 강령(1941.11.)법9-15-23
물자통제령을 공포하여 배급제를 확대하였다. / 물자통제령(1941.12.)국9-18-08
대일선전포고문 / 1941.12.국9-20-20 • 우리는 3천만 한국 인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영⋅미⋅소⋅캐나다 기타 제국의 대일 선전이 일본을 격패케하고 동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됨을 축하하여 이에 특히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한국 전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였으니 한 개의 전투 단위로서 추축국에 선전한다.
2. 1910년의 합방 조약과 일체의 불평등 조약의 무효를 거듭 선포하며 아울러 반(反) 침략 국가인 한국에 있어서의 합리적 기득권익을 존중한다.
…(중략)…
5. 루스벨트⋅처어칠 선언의 각조를 견결히 주장하며 한국 독립을 실현키 위하여 이것을 적용하여 민주 진영의 최후 승리를 축원한다.
/ 대일선전포고문(1941.12.) 국9-14-04
• 한국 광복군은 조선의용군과 연합하여 일본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하였다. / X ⇒ [한국 광복군]은 일본에 대해 선전 포고를 하였다. 대일선전포고(1941.12.) 조선의용군(1942.7.10.)국9-14-04 • 1. 한국의 전체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전선에 참가해오고 있으며, 이제 하나의 전투 단위로서 추축국에 선전한다.
2. 1910년 한일 ‘병합’과 일체의 불평등조약은 무효이며, 아울러 반침략 국가가 한국에서 합리적으로 얻은 기득권익이 존중될 것임을 거듭 선포한다.
3.한국, 중국과 서태평양에서 왜구를 완전히 몰아내기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거둘 때까지 혈전한다.
/ 대일선전포고문(1941.12.10)법9-21-11
• / (가)충칭 (나)류저우 (다)창사 (라)상하이 (가)[충칭]에서 대일선전포고문 발표법9-21-11
한국광복군은 김원봉이 이끌던 조선의용대의 병력을 통합하였다. / 1942.5.국9-20-20 한국광복군조선의용대흡수하였다. / 1942.5.국9-14-04 조선 의용대원의 일부가 한국광복군편입되었다. / 1942.5.법9-15-23 • 일부 대원이 한국 광복군편입되었다. / 1942.5. 조선의용대법9-12-22
조선독립동맹은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를 기반으로 조선의용군을 조직하였다. / 1942.7.10.국9-20-20 조선의용군이 조직되었다. / 1942.7.10.국9-14-04 • 중국 공산군과 함께 화북에서 항일전을 벌였다. / 조선의용군(1942.7.10.)지9-13-12 화북 지방에서 조선의용군을 결성하여 일제에 저항하였다. / 조선의용군(1942.7.10.)법9-19-09 중국군화북 지방에서 공동 작전을 전개하였다. / 조선의용군(1942.7.10.)법9-14-20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 이윤재, 최현배 조선어학회 사건(1942.10.)지9-20-16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생하였다. / 조선어학회 사건(1942.10.)법9-12-05
학도 지원병 제도가 실시되었다. / 1943국9-20-18 • 신고산이 우르르 함흥차 가는 소리에
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어뜯고요
/ 조선인학도육군특별지원병제도(1943.10.20.)지9-19-17
학생들도 모집 대상이었다. / 조선인학도육군특별지원병제도(1943.10.20.)지9-19-17 • 처음에는 징병제에 따라 동원되기 시작하였다. / X ⇒ 처음에는 [모병제]에 따라 동원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인학도육군특별지원병제도(1943.10.20.)지9-19-17 학도 지원병제의 폐지를 요구하였다. / 조선인학도육군특별지원병제도(1943.10.20.)법9-17-23
영국군의 요청에 따라 인도, 미얀마 전선에 한국광복군이 파견되었다. / 한국광복군(1943)국9-20-20 영국군의 요청으로 일부 병력을 인도버마(미얀마) 전선에 참전시켰다. / 한국광복군(1943)국9-14-04 인도, 미얀마 전선에서 영국군과 공동 작전을 펼쳤다. / 한국광복군(1943)지9-13-12
• 국내⋅외에서 줄기차게 전개된 독립 운동은 연합국이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다. 1943년에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의 처칠 수상, 중국의 장제스 총통은 ‘한국인이 노예적 상태에 있음에 유의하여 적당한 절차(in due course)를 밟아 한국을 독립시키기로 결의한다’는 내용이 담긴 ( ㉠ )을 발표하였다. / ㉠카이로 선언(1943.11.27.)지9-17-2-13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의 독립을 약속하였다. / 1943.11.27.법9-12-10
• 7월 20일, 학생들과 체조를 하고 있었는데 면사무소 직원이 징병영장을 가져왔다. 흰 종이에는 ‘징병영장’ 그리고 ‘8월 1일까지 함경북도에 주둔한 일본군 나남 222부대에 입대하라’고 적혀 있었다. 7월 30일, 앞면에는 ‘무운장구(武運長久)’ 뒷면에는 ‘축 입영’이라고 적힌 붉은 천의 어깨 띠를 두르고 신사를 참배한 후 순사와 함께 나룻배를 타고 고향을 떠났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탈 때까지 순사는 매섭게 나를 감시하였다. / 징병제(제1회 징병검사 1944.4.1.~8.20.)지9-13-13
• ◦ 주석: 김구
◦ 부주석: 김규식
◦ 국무위원: 이시영, 조성환, 조소앙, … 김원봉, 김성숙
/ 대한민국 임시정부 5차 개헌(1944.4.22.)법9-15-23

• (가)___는 조선 건국 동맹을 조직하였고, (나)___는 식민 사학의 한국사 정체성론을 반박하였다. / (가)여운형 (나)백남운 조선건국동맹(1944.8.10.) 조선사회경제사(1933 백남운)지9-22-20 여운형조선건국동맹을 조직하였다. / 조선건국동맹(1944.8.10.~1945.11.12.)지9-15-06
• 신고산이 우르르 함흥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어머니 딸이 가엾어 울고요 / 여자정신대근무령(1944.8.23.)지9-19-17 • 정신대는 국민징용령에 근거한 조직이었다. / X ⇒ 정신대는 여자정신대근무령(1944.8.23.)에 근거한 조직이었다. 국민징용령(1939.7.8.)지9-19-17
얄타 협정 / 얄타 협정(1945.2.4.) : 소련의 대일전 참가 결정지9-17-2-13
경성 부민관폭탄을 투척하였다. / 부민관 폭탁 투척(1945.7.24.) 부민관(문화 예술 공연이 진행된 경성부 부설 강당) 대한애국청년단국9-16-15
포츠담 선언 / 포츠담 선언(1945.7.26.): 카이로 선언 이행 확인, 일본 영토 한정, 한국 독립 재확인지9-17-2-13 미국 전략정보처(OSS)와 협력하면서 국내 진공준비하였다. / 1945, 한국 광복군(1940 창설)국9-14-04 한국광복군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였다. / 1945국9-13-04 미군전략정보국(OSS) 지원 아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 / 국내 진공작전(1945.8.6.에 8.18.에 진공계획 수립, 한국광복군)지9-19-15 미국 전략 정보처(OSS)와 협력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다. / 국내 진공작전(1945.8.6.에 8.18.에 진공계획 수립, 한국광복군)법9-19-09 • 국내 정진군을 통한 국내 진입 작전이 추진되었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내 진공작전(1945.8.6.에 8.18.에 진공계획 수립, 한국광복군)법9-15-23 국내 진공 작전을 계획하였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기회가 무산되었다. / 국내 진공작전(1945.8.6.에 8.18.에 진공계획 수립, 한국광복군)법9-14-20